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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중에서 1장.5. 자주통일방침과 그 실현의 길에서 -인생말년을 빛내여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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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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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중에서

 

 제    1    장

통일적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의 길에서

5. 자주통일방침과 그 실현의 길에서

인생말년을 빛내여주시다

 

1949년 6월 25일부터 28일사이 평양에서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력사적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대회가 열리였다.

당시 조성된 정세는 미제와 매국노 리승만도당의 로골화되는 침략책동을 분쇄하기 위해 북과 남의 모든 애국적정당, 사회단체들을 총집결하는 단일한 통일전선조직체로서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결성을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8(1949)년 5월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중앙위원회 제37차회의와 6월 북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6차회의에서 조국통일의 기치밑에 전민족적반미구국통일전선을 형성하고 북과 남의 진보적인 정당, 사회단체들을 총집결하여 통일전선운동을 전개하며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통일위업을 실현할데 대한 주동적인 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사업에 온갖 심혈을 다 기울이시였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결성은 조국의 분렬을 막고 우리 민족의 힘으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쳐오신 로고의 결실이였다.

이 회의에는 북남조선의 71개 애국적정당, 사회단체에서 선출된 대표 704명이 참가하였다. 회의에서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이 정식으로 결성되였으며 중앙위원회가 구성되였다.

조국전선은 북남조선의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하나로 통합하고 거기에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 나선 남조선의 중간 및 우익정당, 사회단체들까지 망라한 전조선적인 유일한 민족통일전선조직으로 되였다.

대회에서는 조국을 통일하는데서 나서는 긴박한 문제들을 토의하고 조국의 평화적통일에 대한 전민족의 의지와 념원을 반영하여 남조선에서 미제침략군과 유엔조선위원단을 철거시키고 남북조선의 전지역에서 민주주의적총선거를 실시하여 조국의 통일을 평화적방법으로 실현할데 대한 평화적조국통일방책선언서를 채택하였다.

선언서에서 천명된 평화적조국통일방책은 미제의 전쟁도발책동을 짓부시고 조국통일의 유리한 국면을 열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며 공명정대한 통일방책이였다.

조국전선결성대회가 열리던 바로 그날이였다.

좌석이 정돈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장을 쭉 둘러보시며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남조선에서 들어온 대표들가운데 리종만선생이 왔으면 주석단으로 올라오십시오.》

회의장은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잠시후 앞쪽에 앉았던 한 늙은이가 엉거주춤 일어서며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겉보기에도 갖은 세파를 다 겪으며 살아온 로인 같았다. 회의참가자들의 시선은 즉시 그에게로 쏠리였다. 그 시선들에는 리종만이 어떤 사람이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석단으로 불러주시는것인가 하는 의문이 짙게 어려있었다.

남조선의 조선산업건설협의회 대표인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신을 주석단으로 불러주실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었다.

뜻밖의 일에 자기 귀를 의심하던 그는 옆사람들이 떠밀어주어서야 주춤주춤 앞으로 나아갔다. 주석단앞에 이른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 정중히 인사를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남조선산업계에서 명망이 있는 리종만선생을 오늘 이렇게 만나니 대단히 반갑습니다. 선생이 년로한 몸으로 38선을 넘어 먼길을 오시느라고 수고하였습니다.

나는 선생이 남조선의 산업건설협의회의 대표로 평양에 와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대회에 참가한데 대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는 너무도 뜻밖이고 너무도 황송하여 감사의 말씀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였다.

그러한 그를 정어린 눈길로 바라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생이 이번에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의 온갖 방해책동을 물리치고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대회에 참가한것은 훌륭한 애국적거사입니다.》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참가자들을 향하여 이분이 민족적량심과 애국적지조를 가지고 일제와 미국놈들과 잘 싸운 조선산업건설협의회 회장 리종만선생이라고 소개해주시였다.

경상남도의 한 빈농가에서 나서자란 그는 3. 1운동때 독립만세도 불렀고 농민운동과 대중계몽운동에도 참가하였다. 그 과정에 광업계에 진출하여 일약 성공하여 갑부가 되였으나 반일애국의 초지에는 변함이 없었다. 해방전에 그가 경영한 대동광업주식회사는 그 산하에 대동광업사의 간판을 단 수많은 광구들을 전국 각지에 두고있었으며 대동농촌사에도 수백만평의 토지를 가지고있었다. 그외에도 평양에 있던 대동공업전문학교, 대동출판사를 비롯한 10여개의 교육기관과 출판사도 경영하였다.

이렇듯 그는 민족산업을 일떠세워보려고도 해보고 민족교육을 목적으로 하여 학교도 세우고 출판사도 경영하였지만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조선민족의 발전이 허용될수 없었다.

일제놈들은 그에게서 집도 가산도 다 빼앗고 강제로 경기도에 있는 봉선사라는 사찰로 내쫓았다.

그곳에서 조국해방을 맞이한 리종만선생은 커다란 감격과 기쁨을 안고 한달음으로 서울로 갔다. 남조선의 조선산업건설협의회 일원으로 있으면서 그는 북반부에서처럼 장차 일제와 지주의 토지를 무상몰수하여 무상분배하여야 하며 국내산업을 발전시키고 외국자본의 침입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미군정청은 그가 저들의 통치에 순응하지 않는다고 하여 삼척공업지구의 운영권마저 박탈하는 행위를 감행하였다.

그는 미군정이 남조선경제명맥을 틀어쥐고 귀중한 자원을 마구 략탈할뿐아니라 《적산불하》의 미명하에 공장과 산업대상들을 친일, 친미분자들에게 넘겨주고 기계설비들을 뜯어가며 《원조》의 간판아래 저들의 잉여상품이나 들이미는것을 보고 격분하였다.

민족산업을 잘 일떠세워보려던 선생의 포부는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에 의하여 또다시 무참히 짓밟히고말았다.

민족적울분으로 가슴을 치고 한숨과 탄식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있던 그는 오래전부터 친교가  있는  허헌선생으로부터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은 어떤분이시고 그이께서 베푸시는 정치는 어떤 정치인가 하는것을 자주 듣게 되면서 북을 동경하기 시작하였다.

한편으로 그는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민족자본가로서 반일애국의 뜻을 품고 일본놈들과 담을 쌓고 지냈지만 심중에서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자본가인 자기를 어떻게 보고 대하시겠는가 하는 위구심은 가셔지지 않고있었다.

그러던 그가 위대한 수령님을 찾아올 용단을 내리게 된것은 4월남북련석회의소식과 더우기 그 회의에 참가하고 돌아온 김구선생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후였다.

《…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우려한다면 당파나 종교의 소속, 재산의 유무, 정치적견해여하를 불문하고 반드시 김일성장군님의 두리에 단결해야 하오. 나는 이전에 공산주의자들이란 협애한 사람들인줄만 알았는데 이번에 가보니 도량이 크고 관대하기 비길데 없다는것을 알았소. 김장군님과 같으신분이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이라는것을 나는 이번에 내 눈으로 실지 보고서야 진심으로 느꼈단 말이요. 그런 공산주의자라면 우리가 무엇때문에 공산주의를 나무라겠소. 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가리키시는 길을 따라 가겠소. 이 길만이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이요.》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은 그의 마음은 점점 더 김일성장군님 계시는 공화국북반부로 향하였다.

바로 이럴즈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평양에서 진행되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대회에 불러주시였다.

이리하여 예순살이 넘은 나이에 리종만선생은 공화국북반부를 찾아갈 용단을 내리게 되였다.

이렇게 평양에 온 그였다. 그런데 지금은 또 북과 남의 각계 애국인사들이 모인 조국전선결성대회 주석단에 오른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휴식시간에 그를 불러주시고 담화를 나누시였다.

《나는 오늘 선생을 처음 만나지만 허헌선생을 통하여 이미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지난날 선생은 많은 재산을 가진 기업가였지만 일제와 담을 쌓고 민족적량심과 애국적지조를 지켜왔습니다. 선생은 일제의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나라의 지하자원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여 후대교육사업과 계몽사업에 기여하여왔습니다.

선생은 해방후에도 남조선에서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과 리승만괴뢰도당의 매국배족행위를 반대하고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잘 싸웠습니다. 우리는 선생의 애국적지조를 높이 평가하고있으며 국토완정과 조국의 번영을 위한 투쟁의 한길에서 언제나 선생과 같은 애국자들과 손잡고 나갈것입니다.》

정녕 분에 넘치는 말씀이였다.

장장 20성상에 걸치는 기나긴 나날 항일혈전을 벌려 조국을 찾아주신 김일성장군님께서 크게 한 일도 없는 자기를 민족적량심과 지조가 있는 애국자라고 높이 내세워주시는것이 아닌가. 너무도 감격하여 눈시울이 축축히 젖어들었다.

그러한 그를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적단합을 위한 통일전선로선에 대하여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해방후 건국사업에 착수하면서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고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여 모두가 새 민주조선건설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설것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오늘 공화국북반부에서는 수많은 애국적기업가들이 우리의 건국로선을 적극 받들고 민족산업의 발전과 나라의 완전자주독립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덕망, 고결한 인품과 사리정연한 말씀에 매혹된 그는 평양에 남아 인생말년이지만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힘껏 일하겠다고 말씀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밝게 미소를 지으시였다. 이때 수령님께서 하신 말씀에는 선생에 대한 크나큰 기대와 믿음이 실려있었다.

《… 앞으로 조국의 통일과 부강발전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늘 조선민족앞에 나선 최대의 과업은 국토완정과 조국의 통일독립을 실현하는것입니다. 이 중대한 민족사적과업은 조국을 사랑하고 나라의 통일을 념원하는 남북조선의 모든 애국적민주력량을 총집결하여 단합된 힘으로 투쟁함으로써만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습니다. 이번에 남북조선의 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이 전국적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대회를 가지고 거족적구국대책을 강구하려는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선생이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대회사업에 적극 참가하기 바라며 앞으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서 책임적인 임무를 맡아주었으면 합니다.》

휴식시간이 끝나갈무렵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생의 손을 꼭 잡으시며 다시한번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우리는 선생이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훌륭한 일을 많이 해줄것을 기대합니다. 선생이 불편없이 사업할수 있도록 내각에서 잘 돌봐주도록 하겠습니다.

선생은 나이도 많은데 건강에 각별히 류의하셔야 하겠습니다.》

회의장으로 향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는 선생의 가슴은 위인의 품속에 안긴 행복감에 젖어들고있었다.

인생의 갖은 우여곡절속에 이제는 살아갈 기운마저 잃은듯 뿌옇게 흐려졌던 그의 눈은 생기를 띠며 반짝이고있었다.

젊었던 그 시절처럼 온몸에 생의 희열과 욕망이 불타오르고있었다. 참으로 꿈같이 흘러간 순간이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으로 내세워주시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 힘껏 일해보려는 소원을 성취하도록 해주시였다. 그리고는 그가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것을 헤아리시고 내각간부학교에서 공부하도록 하시는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애써 일하였다.

새 조국건설과  조국통일위업에 적은 힘이나마 바치려는 그의 마음을 그 어떤 크나큰 재부보다 더욱 귀중히 여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생에게 온갖 사랑을 다 기울이시였다. 나라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외국에 가서 안전하게 생활할수 있도록 은정깊은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리종만선생이 수령님의 품속에서 살아온 나날의 이야기들속에는 오늘도 사람들을 깊은 감동의 세계에로 이끌어가며 전설처럼 전해지는 사랑의 이야기도 있다.

전후의 어느날 리종만선생을 몸가까이 부르신 수령님께서는 당시 나라의 경제실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동이 절실히 필요하다는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일제때 광업에 종사하면서 수많은 곳들을 탐사해본 그는 《장군님, 문제없습니다. 동도 많고 금도 많습니다.》라고 하면서 북부지역의 어느 한곳에 20만t정도의 동광석이 매장되여있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리하여 그곳에 대한 탐사사업이 진행되게 되였다. 그런데 어찌된셈인지 동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날이 흐를수록 선생은 초조해지기 시작하였다. 동을 찾으리라 생각하며 신심을 안고 일에 착수했건만 로력과 자금만을 소비하고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차츰 어두운 그늘이 비껴가고있었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이 방안을 거니시였다. 그이께서는 동도 많고 금도 많다며 젊은이들처럼 흥분하여 말하던 로인의 모습을 그려보고계시였다. 그 순간의 선생은 전혀 로인답지 않았었다. 깨끗하고 지어는 천진하게 느껴지던 그 모습이였다. 무엇때문이였던가. 귀중한 자원을 찾아 조국의 부강에 이바지하게 되였다는 기쁨이 그 모습에 어려있었던것이다.

하지만 끝내 인민경제발전에서 거대한 의의를 가지는 동광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랜 기업가인 그는 그 동광석의 가치를 너무도 잘 알고있을것이였다. 그러니 그가 지금 얼마나 락심하고있겠는가.

수령님께서는 실태를 보고하는 일군들의 모습을 둘러보시였다. 그 모습들에는 동광석을 끝내 찾지 못했다는데서 오는 아쉬움과 리종만선생에 대한 야속함이 비껴있었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결코 동광석 20만t의 가치와 한 애국자의 가치를 비교할수 없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동광석이 20만t이 없다고 해도 동무들이 리종만선생에 대하여 절대로 다르게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우리가 리종만선생을 믿은것은 동광석때문이 아니라 그 선생의 애국적인 지조와 민족적인 량심이라고 하시면서 앞으로 리종만선생을 잘 도와주라고 하시였다.

수령님의 그 말씀을 받아안은 리종만선생은 소리내여 울고울었다. 백만금을 가진 자산가라고 하지만 항상 공허감속에 살아온 자신이였다. 조선사람으로서 그가 이룩한 성공이나 축적한 재부를 놓고 사람들이 찬사를 늘어놓을 때는 더욱 그러하였다. 돈이 자기 인생의 목적은 아니였던것이다. 하여 조국을 위한 큰일을 맡게 되였을 때 선생의 기쁨은 그 어디에도 비길수 없는것이였다. 그런데 그 기쁨은 일순간에 죄의식으로 바뀌였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조국에 손해를 끼치게 된 지금 자기를 탓할 대신 오히려 믿음을 주시는것이 아닌가. 수령님께서는 자기의 인간적가치를 돈이나 광석 몇t으로 계산하지 않으시였다. 애국심에서 한 인간의 참된 가치를 찾아보시고 높이 내세워주시는 수령님의 그 믿음은 백만금에도 비길수 없는것이였다.

후날 리종만선생은 대동광업주식회사청사를 공화국정부에 아낌없이 희사하였다. 제손으로 또박또박 박아쓴 《양도증서》를 내놓으며 자기의 마음속진정을 이렇게 토로하였다.

《저에게는 김일성장군님의 신임이면 그밖에 더 바랄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크고 가장 귀중한 수령님의 신임을 받아안은 나에게는 재산도 귀하지 않으며 명예도 귀하지 않습니다.》

리종만선생은 그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다년간 활동하였다.

인생말년을 행복하게 지내던 그가 1977년 1월 92살에 로환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애석함을 금치 못해하시며 자신께서 그를 잘 알고있다고, 장례를 잘해주어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어 그와 함께 일하던 일군을 부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종만선생은 참 좋은분이였다고,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지하자원개발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였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리종만선생이 그렇게도 념원하던 조국통일의 그날을 보지 못하고 간것이 가슴아픕니다.

리종만선생의 장례를 잘해줍시다. 나는 가지 못하지만 내대신 동무가 가서 유가족들에게 나의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하여주시오. 그리고 나의 명의로 된 화환도 보내고 신문과 방송에 부고도 내도록 합시다. 리종만선생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정무원에서 맡아하도록 하고 모든 장례비용은 국가비용으로 합시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전달받은 유가족들은 고마움에 오열을 터뜨리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끝없는 믿음이 있어 리종만선생은 인생의 말년에 조국과 겨레를 위한 보람찬 나날을 보내게 되였으며 조국통일상수상자, 통일애국인사로 긍지로운 삶을 누릴수 있었다.

생전에 선생은 자기의 수기에 이런 글을 남기였다.

《가슴속에 더운 피가 맥박치고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을 따라나서야 한다. 나는 이 길이야말로 나라의 통일독립을 위한 길이며 또 이 길에 개인의 행복도 영예도 있다는 가장 고귀한 진리를 깨달았다. 이것은 나의 어제와 오늘이 실증해주고있다.》

리종만선생의 한생은 오늘도 참다운 인생의 길은 어디에 있으며 인간의 삶의 가치는 어떻게 빛나는것인가를 후세의 가슴에 새기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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